고려후기 문학은 위기에 처한 중세적인 가치관을 현실의 움직임에 맞게 재편성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그런 방향에서 문학관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표현양식을 찾는 등 고려전기 문벌귀족의 문학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무신집권기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동
고려전기의 귀족과 신흥관료, 고려후기의 권문세족과 사대부 , 조선전기의 훈구세력과 사림 등의 관계설정이 그것이다.
고려후기 정치 지배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權門勢族」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 李基白에 의해서이다. 그는 개설서인 《韓國史新論》(1967년판) 제8장 「士大夫의 登場
고려후기에는 학자들이 관계를 은퇴하여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면 서재를 세워 후학을 교육시키는 일이 많았다. 고려시기 교육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고 실시되어, 중앙에 관학인 국자감과 사학인 12공도가 핵심이었다. 문벌귀족이 세력을 떨치던 시기에는 사학이 크
고려후기에 교육중흥을 주도하였던 왕으로서, 그의 노력으로 학교교육은 크게 활성화 되었으며, 아울러 학당교육도 번창하게 되었다. 그 후 공양왕대에 이르러 동서학당은 오부학당(東,西,中,南,北部의 학당을 말함)으로 대 개편 되었다. 이는 “공양왕 2년 2월에 서울 五部와 서북면의 府와 州에 儒學
고려속요
1. 고려속요의 범주
속요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고려시대의 노래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헌에 실린 작품 가운데 고려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노래들을 모아서 따져야 할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중요문헌으로는 『고려사(高麗史)』,『악학궤범(樂學軌範)』,『악장가사(樂章歌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