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외교 담판
1. 거란-송-고려의 대외관계와 압록강 하구의 중요성
936년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960년 중국에서는 송이 5대10국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통일을 이루었다. 중국을 통일한 송은 당시 북방을 통일한 거란과의 대립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송은 거란과의 고량하 전
관계 변화
당의 기미주 편입 요구에 대한 신라의 저항.
‘나당전쟁’을 통한 책봉/조공 관계로의 복귀.
고려의 내부
몽골에게 30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침략을 받아 피폐해진 상태.
대몽골 강경론을 주장하던 최씨 정권이 무너지고 대몽 강화론이 대두됨.
몽골의 내부
4 대 황제가 갑작스럽게 죽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당시의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와 같은 대외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전제에서부터 오류를 범하는 것.
고려시대의 대외관계사 연구는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즉 고려시대대외관계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전개라는 객관적 시각, 즉, 고려-송, 거란,
1. 서론
<거란과의 전쟁서막>
* 고려와 거란 송의 관계고려의 기본적 대외정책은 북진정책과 친(親)송 정책 이다. 태조 왕건은 훈요10조를 빌어 거란을 금수와 같은 국가라 칭하며 거란을 멀리했으며 친송 정책을 펼쳤다. 거란과 송은 북경 이북에서 요동반도 사이에 있는 연운16주 지역의 문제를 둘
고려를 구해낸 사람은 서희이다. 그는 호족중심의 관료들을 견제하기 위한 신진세력으로 과거를 통해서 관직에 올랐다. 그리고 22세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검교 병부상서’라는 벼슬까지 얻는다. 이런 경력은 그로 하여금 국제관계를 꿰뚫는 혜안을 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