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백제의 고분
서울, 공주, 부여, 전라도로 나누어져 특색을 보이고 있다. 서울지방은 간단한 널무덤 외에 고구려식의 돌무지무덤과 돌방무덤이 축조되어 백제의 건국집단이 고구려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서울 석촌동(石村洞)의 계단식 피라미드형 돌무지
고분인데, 현재 약 80여기의 고구려 벽화무덤이 남아 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그 위치와 내용등이 기록으로 발표되어 있는 것은 통구지방에 20, 평양지방에 약 40, 합해서 약 60기뿐이다. 고구려 벽화 무덤은 그 짜임새와 벽화 내용이 매우 다양하므로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주제별 분류해
Ⅰ. 개요
고구려는 정복국가인 동시에 문화국가이다. 고구려는 기마를 이용한 우수한 기동력과 철기를 바탕으로한 국력을 배경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합한 동방의 강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고조선 문화를 계승하여 유기 신집으로 대표되는 역사서를 비롯하여 찬란한 고분벽화 등 수많
고분벽화는 무덤의 구조형식, 채색기법, 벽화내용의 유형, 시대별 성격에 따라 분류되고 있다. 무덤의 구조 형식에 따라 살펴보면 대체로 외칸무덤, 두칸무덤, 여러칸 무덤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채색기법은 무덤 안을 구성한 돌의 겉면을 매끈히 다듬고 그 위에 그린 것도 있고, 돌 위에 회벽을 칠하
2. 벽화의 기원과 발전
고분벽화가 고구려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무덤 안에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시대의 산동성 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한 석관(石棺) 등에 그림을 새긴 후 채색하지 않는 화상석(畵像石)에서 고분벽화가 발전한다. 고구려에서 최초로 벽화가 그려진 고분은 만보정1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