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고조선의 왕위세습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되었다(B.C 2333). 단군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천신의 아들이 내려와 건국하였다고 하는 단군 건국의 기록은 우리나라 건국 과정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밝혀주고 있다. 이것은 또 고려, 조선, 근대를 거치면서 나라가 어려
왕위 또한 선거 방식에서 세습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율령제 하에서 租․調․力役의 농민에 대한 수탈이 본격화되어 고대 농민의 빈궁화가 가속되었다. 고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왕의 구제행위가 인정의 구현 수단이자, 왕권 강화의 정책적 수단으로 행해지기 시작했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고
백제, 신라 삼국이 각기 다른 신분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는 지배계급, 족장 계급, 노비 계급으로 나뉘었고, 백제는 양반, 중산층, 노비 계층으로 나뉘었다. 신라에는 태생에 따라 6등급으로 나뉘는 골품제도라는 독특한 신분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신분 세습 제도는 각 국가의 사회 구조와 권력
백제와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라고 하겠다. 만일 신라나 백제가 고구려의 배후를 공격하지 않고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면 고구려는 비록 일시적일지는 몰라도 화북지방에 그 서울을 둘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고구려이기 때문에 그 문화는 화북지방뿐 아니라 소위 북방 이민족들과의 접촉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였다.
2. 영토확장과 전성기
고구려는 소수림왕(小獸林王:재위 371∼384) 때 불교 공인과 태학(太學) 설립(372), 율령(律令) 반포(373) 등으로 국가체제 정비와 정치적 안정기반이 구축되었다. 이와 같은 단계에서 즉위한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은 정복 군주로서 백제의 한성(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