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고려시대의 왕
1. 태조왕건
궁예의 실정이 거듭되자,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등의 추대를 받아, 918년 6월 궁예를 내쫓고 새 왕조의 태 조가 되었다. 철원의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高麗),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많
들어가며
공민왕의 개혁을 두고 반원정책이라 하기도 하고 개혁정책이라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둘 사이의 경계점이 어디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백여 년간 지속된 원과의 관계 속에서 정립된 많은 것들을 다 뜯어고치는 상황에서 모든 정책은 반원이기도 하고 개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공
1. 충선왕, 충목왕대의 개혁정치 및 평가
1.1 충선왕대 정치개혁의 내용
충선왕의 개혁정치는 크게 ①정방혁파, ②용원감축, ③기강정비의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충선왕은 선대왕인 충렬왕에 비해 더 본직적인 개혁을 시도하였다.
먼저, 정방혁파의 경우, 충선왕은 정방을 아예 없애고 이를
왕안석의 신법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12세기 초 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북중국을 빼앗기고 강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양쯔 강 이남 지역의 개발이 촉진되어 강남이 경제와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 주희가 체계화한 성리학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의 여
왕은 정치도감을 중심으로 개혁정치를 수행하였는데, 이 개혁을 주도한 사람들은 과거를 통하여 중앙정계로 진출한 지방출신의 사대부들이었다. 이러한 개혁이 실패한 원인은 권문세족의 반발 원의 간섭 개혁을 뒷받침할 세력의 부재 등이었다.
4. 공민왕의 개혁
공민왕대 교서의 형식을 빌려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