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었다는 민주주의 사상의 커다란 윤곽은 이미 공자에게도 존재했었으며 오히려 더 구체적인 인간상을 제시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법치에 익숙한 우리에게 예치란 것이 허황된 것 같기도 하지만 공자의 예치란 분명히 행할 수 있는 실생활의 예를 바탕으로 하기에 결코 이상만이 아닌 것이다.
Ⅰ. 서론
공자는 周의 전통 문화를 매우 동경하여, 스스로 전통 문화의 계승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전통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禮’이기 때문에 공자도 이 전통적인 禮를 매우 존중했다. 어느 문인이 제사 때 양을 바치는 법을 폐지하고 싶다고 말하자 공자는 ‘나는 양을 아끼기보다
Ⅰ. 서론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쉰에는 천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고, 예순에는 어떠한 말을 들어도 그 이치를 깨달아 저절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일흔에는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이것은 공자의 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말로써, 그의
●영향
공자는 많은 제자들을 교육하여 인의 실현을 가르치는 한편, 자기자신도 그 수양에 힘써,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술회할 정도의 인격에 도달했기 때문에, 생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후에는 제자들이 각지에서 그 가르침을 전파하였으나, 제자백가(諸子百家
1. 공자의 사상과 정치이론
공자는 춘추시대의 인물이다. 춘추시대는 주나라의 예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채 과도기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출현하여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공자의 중용철학이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