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와 문화 발전
1. 다져지는 고려 왕조
태조 왕건은 고려의 북쪽, 고구려의 옛 땅을 찾으려고 요나라를 치려 하였으나 백성들이 전쟁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만 두고 백성들을 돌보려고 3년 동안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걷지 않고 대신 고려의 고유한 풍속과 제도, 그리고 팔관회와 연등회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은 모두 부자 사이에 심한 권력투쟁을 겪었다. 그 결과 왕과 정치가들은 이 불안정하고 치열한 권력투쟁에 휘말려 무엇이 국가에 바람직한지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면서 그들은 이상적인 목표를 꿈꾸지 않고, 생명의 안전과 안락한 생활만으로 만족했다.
신라이래 불상, 종, 석탑을 조성하거나 법회의 노동력제공 등 불교활동을 벌여온 香徒가 자치단체로 변신하여 호장의 지도를 받음.
향, 부곡은 농민 거주(신라때 생김). 부곡이 군현으로 군현이 부곡으로도 됨.
고려 때 생긴 所는 금, 은, 동, 철, 종이, 먹, 도자기 등 특정공장들의 집단거주지
촌에는
바위꼭대기의 청송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조화를 이룬 가운데 江岸에 우뚝하게 솟은 바위가 있어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이 때문에 鐵原八景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新增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新羅 진평왕과 高麗의 충숙왕이 일찍이 이곳에서 노닐었다고 한다. 朝鮮時代에 이르러서는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