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를 읽고
전시 상황에서의 올바른 가치관
[줄거리]
1941년 일본 관동군 중 일부가 만주 731부대로 명칭을 바꾼 세균전 연구소에서 시작한다. 설립 당시의 사령관은 1930년대 초 유럽 시찰을 통해 세균전의 효용을 깨닫고 이에 대비한 전략을 적극 주창한 사람은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 중장으로
관동군의 군정통치요, 인적, 물적 자원의 착취이다. 많은 중국인들에게 만주국의 이미지는 무시무시하게 착취당한 식민지, 혹은 악명 높은 관동군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잠깐 주둔한 군사기지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면 만주국을 건국한 장본인인 일본에게 만주는 어떤 존재였을까? 왜 독립
ⅱ. 류타오거우 사건
만주 침략을 위해 일본 관동군 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를 중심으로 <만몽영유계획>이 모의되었다.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30분경 류탸오거우에서 만철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이를 중국의 장쉐랑 군대의 소행으로 몰아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다. 일본 관
Ⅲ. 박정희의 변모. 기회주의적 행동인가, 자기 모습 찾기인가.
이 장에서는 박정희의 청년기부터 5 ․ 16 직전까지의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관동군 전력을 가진 박정희에 대한 옹호 논리 중 하나인 “박정희의 선택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논리에 대하여 비판적으
관동군예하에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보공작을 주로 맡았다. 박정희는 이러한 분위기의 학교에서 수석을 하였다는 것이다.
(3) 직업과 경력상의 문제
박정희는 3년에 걸친 보통학교 교사생활과 2년에 걸친 관동군 장교 생활과 해방조국에서의 약 14년에 걸틴 한국군 장교생활을 마치고 한국군에서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