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물편」「백언해」「이자수어」그리고 「文集」「續集」등에서 정치, 경제, 사회에 관한 시폐를 명확히 분석․비판하고 각기 적절한 개혁안을 내어놓아 당시 봉건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였다. 그가 이와같이 철학적 사회개혁론을 펴는데 가장큰 원칙은 「經世致用」이었다. 이러한
관물론이라는 부제를 보니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관물이 무슨 뜻 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觀物에서 觀자는 ‘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看, 見 등과는 약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觀 자가 쓰인 단어들을 찾아보면 觀察, 觀
론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숫자로 분류하는 법을 알면 모든 존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2 또는 5라는 숫자를 선호하던 이전의 학자들과는 달리 세계의 열쇠는 '4'라는 숫자라고 믿었다. 따라서 우주는 4개 부분(해·달·별·황대), 몸
조선후기사회는 壬辰倭亂과 丙子胡亂 등을 통하여 파탄에 이르러 있었다. 이에 朱子學에 맞서서 새로운 학문 ․ 사상 등을 통해 파탄에 이른 조선 사회체제를 재정비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혁명적인 제도와 사상 등이 등장하였는데, 유형원의 『磻溪隨錄』은 이 再整備案을
1.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1-1. 일제 강점기 호남에서의 민중운동
정순제,「호남종횡관(湖南縱橫觀)」: “전남은 과거 갑오운동과 현금의 농민운동의 진원지로서 무산의 소작인들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약자의 무기는 오직 단결뿐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면 단위로 노동단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