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를 말한다. 물론 고려시대부터 백자가 만들어지긴 하였지만 고려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뚜렷하지 않고 조선백자는 명나라백자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으로 보아진다.
조선초기는 고려청자와 분청사기의 영향으로 퇴보된 청자나 분청사기가 일부 생산되다가, 경기도 광주의 관요가 활성화되면
백자질이 가장 우수하고 서울에서 가까우며 수림이 풍부하고 한강을 이용한 수운이 편리한 경기도 광주(廣州, 한강의 지류인 경안천 양변)에 분원(分院)을 두어 왕실어용(王室御用)의 자기번조를 전담케 하였으며 지방수요에 응하는 자기는 지방관요(地方官窯)와 민요(民窯)들에 의해 생산되었다. 따라
Ⅰ. 도자기 상감청자
고려 청자의 대명사인 상감(象嵌)청자는 대체로 12세기를 전후하여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북한의 발굴자료에 의하면 11세기 초 개성 진봉리에서 상감청자가 나왔다는 보고서가 있어 늦어도 11세기부터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상감기법은 문양을 파고 움푹이 패인 부분
1. 청자(靑磁)
청자란 말 그대로 청색 자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청색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매우 막연한 표현이 된다. 서긍의 『高麗圖經』에는 “도기로서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翡色)이라고 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청자를 따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려도경의 인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