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중항쟁’론의 성취와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여, 그것을 더욱 풍부화시키는 혹은 한단계 더 뛰어넘는 인식의 지평을 열어야 하겠다. 필자는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할 능력은 없고, 다만 여기서는 도식화된 혹은 교조화 된 ‘광주민중항쟁’론을 지양하기 위해서 몇가지 다시 생각해볼
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주화운동, 5 18광주민중항쟁) 트라우마티즘의 중요성
5.18로 인해 생성된 트라우마티즘은 트라우마티즘의 본래 연구 대상이었다. 트라우마티즘은 개개인의 고통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은 신체적.심리적 트라우마티즘과 집단적 관계 속에서 강화 혹은 약화되는 사회적.경제적
광주항쟁을 재현하고 더 나아가 계속투쟁에의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의도한 가장 중요한 상징은 제목에 있다. 그는 ‘광주’를 전 세계의 자유,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과 시대의 모범적 모델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이금자의 시 <이 오월에>는 겨우 한 해 지난 1981년 생생한
민주 시민사회의 건설, 복수정당 제도와 의회의 대의 기능, 공정하고 보편적인 선거에 의한 정부구성 및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 등이 좋은 보기이다.
그러나 국민주권의 개념이 광주항쟁에 관련하여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제도화된 국민주권
항쟁 주체가 학생들의 선도적 역할을 매개로 전체 민중에로 확산되었으나 기층민중이 주력으로 서지 못하였고, 그 투쟁의 전술도 당시의 시대적 제약을 받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반독재 투쟁에 한정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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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