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효사(卦爻辭)에도 ‘천지(天地)’ ‘만물(萬物)’이 없다. 유교에서 가장 중시되는 이 두 경전에서 천지(天地) 만물(萬物)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기본 시각을 시사한다.
공자는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인간 사회에 대한 것만큼의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훗날 자연세계를 의
수를 말하면 사람들은 계산하는 산수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가령 『漢書·律曆志』에서는 “수란 일·십·백·천·만으로 사물을 세어나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실 이는 다만 수의 기본성질 중의 하나일 뿐으로서, 하나의 철학적 개념이 되면서 광범위한 문화적 함의를 포함하게 되었다. 먼저
Ⅰ. 개요
소아 때 병을 앓아 귀머거리에 장인이었던 헬렌 켈러는 가정교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습 진도가 거의 나질 못했다. 그러나 헬렌 켈러가 자신이 대야에서 얼굴을 씻을 때 이름 붙혀 발음한 '물'과, 가정교사와의 소풍에서 경험한 힘찬 펌프질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물'이 같은 '물'이란 것
자연을 그대로 본받은 자연 그 자체의 학문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하늘의 운행이 땅에 영향을 주고, 땅은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을 변화하는 동시에 그 영향을 하늘에 다시 미친다. 하늘은 이 것을 받아들여 변화하고 그 변화를 다시 땅에게 주는 순환을 연속한다. 그 가운데 사람으로 대표되는 만물이 자
인도가 종교의 나라라고 한다면 중국은 동양철학사상의 본원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중국 사상하면 먼저 고루하고 답답하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여긴다. 그 깊이에 있어 감탄을 하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찬찬히 조심스럽게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