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법이 완전한 것이 아닌 만큼 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동법이 정보공개법과 짝을 이루어야 가능한 터인데, 그 정보공개법은 수요자가 원할 때만 정보를 공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기록 정보의 효율적 활용’을 목적으로 한 기록물관리법 역시 기록생산
성격을 갖는다면 다섯 번째 과제는 미래지향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미해결의 과제들은 역설적으로 5월운동의 열린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미래의 전망에 대한 시사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광주항쟁의 의의를 다시 성찰해볼 필요가 있
Ⅰ. 서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에 걸쳐 비상계엄령을 갑자기 선포하고 특별선언을 통해 일련의 비상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해산되고, 정당 활동을 비롯한 모든 정치활동은 금지되었으며, 엄격한 언론검열이 실시되고, 대학은 휴교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헌법
운동의 주요한 흐름의 하나인 민족해방의 과제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5·18민중항쟁은 한국 내부의 계급간의 갈등이라기보다 한국민과 미국 및 매판세력간의 싸움이다(임진철,1988), 그 근거로 광주 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총칼로 짓밟은 것은 미국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한국군이었다는 점, 극소수
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항쟁)의 한국인식
광주민중항쟁이 신군부세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된 후,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공세적인 폭력적 사회통제정책이 실시되면서 5.18과 관련된 모든 기억은 침묵을 강요받게 되었다. 자신의 경험한 일일지라도 그 내용을 발설하면 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