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김일성 그가 대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45년 10월 14일 김일성장군 환영 평양시 민중 대회에서의 일이다. 그가 귀국했을 때는 만 33세의 청년이었다. 본래 만주에서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한 항일 투사들이 여러 사람 있었다. 그러한 이유도 참작하여 김일성은 평양시 민중
국가검열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남한에서 미군정 치하의 경찰에 붙들렸을 때 친일 경찰로 유명한 노덕술에게 고문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들이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보호를 받으면서 득세하는 잘못된 사회 흐름에 실망한 것이 월북의 한 동기라는 일화가 있다.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체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하는 유일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3대에 걸친 부자 권력세습이이루어졌다. 북한체제가 지닌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북한사회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체제에 대한 외형적 이해를 넘어서 북한사회의 본질을 구
국가건설의 꿈에 부풀어있던 그를 맞이한 것은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이었다. 그 시점에서 김원봉은 한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좌익 쪽인 민전의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던 김원봉에게 탄압이 가해졌다.
10월 항쟁과 전평 총파업으로 이어지는 상황속에 검거되었던 김원봉은 친일
해방전후사
(김원봉에 대하여....)
1. 인물소개
김원봉은 의열단장, 조선의용대 창설, 임시정부광복군 부사령관, 민주주의민족전선 공동의장, 북한정부 검열상 등 다양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그는 남북 모두에게서 잊혀지게 되고 말았다. 남한에서는 월북을 한 이유로 그의 일가친척이 풍비박산이 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