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규경의 학문형성 배경
1) 가학(家學)의 전통
이규경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의 집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조부인 이덕무와 아버지 이광규는 모두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중인 신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신병주, 『조선중,후기 지성사 연구』, 새문사, 2007, p.315
아마 오늘날
● 일군날(2.1)
- 농경시작에 앞서 일군들이 회식을 함&풍년을 기원
- 일군날의 의미가 왜곡된 것
18~19C 노비일(동국세시기) : 봉건적 느낌(소작농・노비에게 농사 잘 지으라고 챙겨줌)
일제시대 지배수단의 일환으로 이용
중국 화조날(2.1) - 왕실에서 사용
- 지방마다 떡을 해먹음
경기 : 송편
평
국역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태조 01 원년/07/17 丙申)
이처럼 태조의 즉위를 다룬 태조실록의 내용은 그야말로 태조 이성계를 높이기 위한 기록이었으므로 최대피해자는 偶와 昌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고려사에는 偶昌王 때가 고려의 정통이 아니라고 보고 거짓 조정 즉, 위조(僞朝)라 하여 기술되어 있
국역 “고려사절요” 제8권에 의하면 “상국을 관광케 하여 구습을 다 버리고..” 기록되어 관광이란 어휘가 최초로 사용된 첫 공식기록으로, 관광이란 “선진국을 관광하여 문물제도를 시찰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해행총재” 및 일부 시문에서도 언급이 있었다.
성형(1439∼1504)이 1473년,1475년,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