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노선과 군사주의화
중소분쟁을 계기로 북한은 6.25전쟁 때 양국이 보냈던 지원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군수공업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와 함께 전 인민의 부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군장비의 현대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 노선에 따라 북한
군사령관에 부임한 M. B. 리지웨이 장군은 UN군의 사기를 회복하고 1월말에는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해 서울을 재탈환하고, 3월 31일 중동부전선에서는 38˚선을 횡단하여 북진을 계속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이 개입한 이상 전장(戰場)을 한반도에 국한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중국본토의 전략
정전 체제에 있어서 ‘6.15 남북 공동 성명’에 이은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의 채택은 종전 체제의 종식에 관한 민족적 의지의 반영이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2.13합의 이후, 북핵 문제는 해결 국면에 접어들고
◎ 서 론
중국사회의 1910년대 사상적 흐름의 변화는 공화사상, 공차교, 민주주의와 과학, 마르크스 주의 등등 괄목할만한 변동을 보이고 있다. 이와같은 사상들은 그 동안 서로 배척, 중첩되면서 소용돌이치고 같이 흐르며 격류를 이루었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
역사적으로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내세웠듯이, 김정은은 ‘강성대국’이라는 체제 통치이념을 내놓고 있다. 이제 김정은과 북한지도부는 ‘선군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공고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성대국’의 슬로건에 걸맞은 ‘경제 살리기’에 박차를 가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