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학에서 가장 큰 문제는 ‘리(理)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장자에서 말하는 천하의 이치(天下之理), 순자에서 말하는 사물의 이치(物之理), 역전에서 말하는 궁리(窮理)등에서 알 수 있듯이 리학에서 말하는 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사물의 규율과 도덕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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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론(居敬窮理論), 정치와 사회 무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세론(經世論)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자는 도덕의 기초가 되는 인륜의 이치에 대하여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추어 설명하였다. 특히, 그는 맹자의 성선설과 앞선 도학자들의 성즉리설(性卽理說)을 집대성하여,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바탕으로 한
16세기 전반기에는 성리학에 대한 깊은 연구 결과로 이기론·사단칠정론·인심도심설 등 이기심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어 이를 둘러싼 논쟁과 학문적 심화과정을 통해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었다. 이황과 기대승(奇大升)간의 사칠논쟁, 이를 둘러싼 성혼과 이이와의 우율논변(牛栗論辨)이 벌어
1. 율곡 이이의 생애(1536~1584)
율곡 이이는 조선 중종 31년(1536)에서 선조17년(1584)까지 생존했던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관향은 덕수(德水), 이름은 이(珥), 자는 숙헌(俶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등이다.
율곡은 나면서부터 영리하여 깨달은 바가 뛰어나서 말을 배우
3. 사상
이언적이 서신을 통해 조한보와 벌인 논쟁은 태극논쟁, 또는 무극태극논쟁이라고 불리운다. 이는 송나라 때 성리학의 기초를 닦는 염계 주돈이(廉係 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의 논쟁은 중국의 주희와 육상신이 벌였던 논쟁의 연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