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원사
가야산 서북쪽에 동향하여 자리잡은 절터로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절터에서 나온 금동불입상이 6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백제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어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이 아닌가 한다. 더욱이 이 지역은 중국의 남조 양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던 시기에 길목 역할을 한
귀신사로 향하는 길이다. 귀신사 앞 어느 여관방에 자리를 잡고 귀신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귀신사라는 절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귀신사’는 영원을 돌아다니다가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이름에 비하면 허름한 절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이다. 또한 작가
귀신사에 도착한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텅 빈 적요를 찾아 떠난 주인공은 보수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해진 귀신사를 보고 실망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섬마을 교사시절, 담임을 맡았던 숙자의 오빠 김종구를 만난다. 주인공은 김종구의 세상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의 아내가 연
귀신사
지금의 귀신사(歸信寺)에서 화엄경을 읽으면서 수학하다가 헌덕왕 17년(825)에 입서 하였다.
그는 남전보원(748~834)의 심인을 전승받아 그 후 문성왕 9년(847)에 굴산사를 개창했던 범일선사와 함께 귀국하였다. 풍악 장담사에 머무르면서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케 하고 징효대사에게 불법을 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