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의 선구자인 이시이의 공연을 보고 무용가로의 입신을 결심하게 되었다.
1926년 5월 본격적인 무용수업을 위하여 동경으로 건너간 뒤 약 3년 만에 주역급 무용수로 발탁되었고 수석대교로 후진을 지도할 만큼 급성장하였으나 1929년 여름 이시이의 돌연한 실명은 그녀의 진로에 커다란 변수가 되었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내한 공연을 오빠 최승일과 함께 보고 나서였다. 벅찬 감동을 안고 무대 뒤 분장실로 찾아갔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조선의 무용가로 성공하겠으니 지도하여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시이 바쿠의 일행과 함께 연구생으로 일본에 건너가서 피나는 훈련이 시작된 것이
그녀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비단 그녀의 굴곡 많았던 삶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사람의 몸, 즉 육체를 보는 전혀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무용을 창조했다. 그 시대만 해도 무용은 부르주아를 위한 일종의 아름다움의 전시에 불과했다. 거기에 반기를 든 이사도라는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훈련을 강요하
무용수로 활동하였는데, 이후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하여 육체의 신비에 대한 관심과 형식에 대한 꾸준한 연구 작업을 통해 안무, 퍼포먼스, 보컬, 설치미술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세계 현대 무용계에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천재”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녀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무용
무용수는 종종 발끝으로 춤추고 남성 무용수들 그녀가 깃털같이 가벼운 것처럼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린다.
무용수들은 그들의 육체를 통제하면서 즐거움을 얻고 발레 관객은 그 느낌을 함께 공유한다. 관객은 그들이 무용수와 함께 미끄러지고 도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육체를 사용해 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