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스, 발저, 엔첸스베르거 등 <47 그룹>의 작가들을 겨냥하면서 서독문학을 “도덕과 계약결혼한 문학”이라고 규정하고, 신념 때문에 예술성을 희생시킨 이들의 ‘신념미학’은 이제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러 또한 “신학적․형이상학적, 관념론적․역사철학적 후견에서 자기해방된 문
Ⅰ. 개요
양철북의 출판 이후에 나온, 그라스의 작품들에 대한 연구는 수 백편에 이르는데 그것들 중 많은 부분이 이 소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비평이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고, 복잡한 알레고리나 종교적인 의미를 연구했던 반면, 소설의 유형, 서술 태도, 그
그라스에게는 회의와 멜랑콜리가 곧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회의와 멜랑콜리가 짙을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은 ‘견디기의 몸짓’이다. 그라스가 우리에게 카뮈를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카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의 태도이다. 그것은 절망감을 주는 시대를 버티는
그라스에게 글쓰기는 곧 인식의 과정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에게 낯설게 혹은 불확실하게 느껴지던 것을 보다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그라스에게 단치히 3부작이 신비에 싸인 나치의 악마성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이었다면, 국부마취는 60년대 말 서독사회의
그라스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석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1985년 11월 말 TV 인터뷰에서 그라스는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해석을 통해 작품을 대하지 말고 작품 자체를 철저하게 읽으라고 권고하며, 해석자들이(독문학자들이) 작품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는 점과 독자들이 작품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