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주의를 알렸다.
1950년대에는 그린버그의 형식주의가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으며, ‘미술계의 교황’, ‘미술계의 감독’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후에 달라진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속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지속되었고 1960년대 전반에 들어서서야 그에 대한 비판이론이 강력히 주장되었
이론은 예술작품이 자연과 상이한 점을 단적으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말하는 것으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공감관계에 대한 의식의 중요성을 지적한다.그린버그는 있는 그대로의 평면성 위에서 어떠한 종류의 공간적 환영도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만, 프라이는 조각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입체감의 표
그린버그의 이론은 결국 3차원적이지 않은 추상적이고 난해한 회화, 사회 문제와는 유리되어 자신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예술 개념을 상정한 것이고, 이는 예술의 영역에서 대다수의 대중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다수의 대중은 그린버그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예술 작품을 보고 난해하다고만
대한 강박과 교조적 형식주의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이 가지는 독립적 지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그린버그와 단토의 예술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린버그는 예술의 형식적 순수성에 대한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하여 예술이
대한 대중의 수동적인 향유에서 보다 적극적인 수요로의 변화이다. 팝 아트의 출현과 함께 사실상 회화의 광고 포스터는 신문, 잡지의 삽화 거리 또는 인물의 사진, 만화, 기타의 일상적 이미지의 복제와의 경제성은 소멸되었다.
대중매체시대에 있어서의 팝아트의 혁신성은 기존의 고급 미술, 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