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왜 번역이 아닌 번안인가?
『금색야차』를 번역이 아닌 번안을 통해 수용한 이유를 알기 위해, 번안을 둘러싼 일재 조중환의 의도와 연재신문이었던 매일신보의 의도, 그리고 그 당시의 문예의 흐름, 마지막으로 당시의 수용계층인 조선의 민중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조중환은 당시 많은 도
비교문학
「장한몽과 금색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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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1. 서론
2. 두 작품 간의 외적비교
2.1. 작가
2.1.1. 일재 조중환
2.1.2. 오자키 고요
2.2. 소설과 신파극
2.3 번역과 번안, 그리고 가정소설
3. 두 작품 간의 내적비교
3.1. 외교 상황
3.2. 배경장소에 대한 인식
3.3. 경제적인 발전
1. 여는 글
‘근대’라고 부르는 시기, 그 이전에 우리 사회에는 ‘연애’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연애’라는 말이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소설을 참조하자면 ‘연애’라는 명사는 1912년〈매일신보〉에 연재된 조중환의 번안작 《쌍옥루》에서
금색야차>
'두 사람은, 오늘아침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며, 아타미에 갔네. 아무래도 어제 의사가 탕치가 좋다고 권한 것 같더군… 12시 30분의 기차로'
아마티 온천이 표면적으로는 탕치의 공간으로 부각되어 있지만 사실은 주인공 미야가 부모님의 권유로 다른 남자와 결혼할 마음이 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