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秘苑)은 조선시대의 커다란 궁궐 곧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의 하나인 창덕궁 뒤쪽에 자리잡은 정원으로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본래 이곳은 비원이라 하지않고 처음 만들어진 조선시대 초기부터 고종(高宗)때까지는 후원(後苑), 북원(北苑)그리고 금원(禁苑)으로 불려졌
구별되는데, 남위는 16위를 말하며, 북위는 宮廷의 금군으로서 황제의 친군이었다. 『新唐書』「兵志」의 기록대로 넓은 범주에서 남북위 모두가 금군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각각이 맡은 임무상에서 본다면 황제숙위를 담당했던 것은 16위였고, 주둔지역도 달라 북아금군은 禁苑에 배치되어 있었다.
原來妙姑自回家之後, 父母卽爲擇配, 已經說允。
원래 묘고는 집에 돌아간 뒤로 부모는 배우자 선택을 이미 허락했다.
妙姑不從, 當夜自經。
묘고는 따르지 않고 야간에 스스로 목을 매었다.
救得醒時, 就剪斷雲?, ?碎玉容, 日夜啼哭。
贅(혹 췌; ?-총18획; zhu?)의 원문은 ?(과부 리{이}; ?-총14획; l?)이다.
.선정전 (宣政殿: 보물 814호)
임금이 평소에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便殿)이다.
임금은 일월오악도를 배경으로 중앙에 앉고 그 좌우로 문관과 무관이 자리잡으며 한쪽에서는 사관(史官)이 앉아 국사에 대한 논의를 세세히 기록하였다. 사관들의 기록을 사초(史草)라고도 하며 이를 토대로 실록을 편찬
중화사상과 우리의 주체성 문제
1. 들어가는 글
2004년 7월. 논자를 포함한 한국인들 모두가 중국의 주요 언론이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전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라는 점을 강조한 것에 대해 분개했었다. 중국이 이렇게 고구려를 자신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