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종교개혁의 시대적 배경
16세기 초 상황은 15세기와 여러 가지 다른 입장에 놓였다. 교황청이 악화되고 봉건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중세가 무너지게 된다. 스페인,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 스웨덴, 러시아에서 강력한 민주주의가 출현하여 교황권이 약화된다. 이때 국가는 기독교와의 관계를 멀
개혁운동의 그늘에 가리워져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단으로 몰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재세례파가 다른 종교개혁보다 급진적인 개혁을 하였기 때문이다.
본래 재세례파는 루터나 츠빙글리의 동지나 제자들이었으나 그들이 처음에 생각하고 있던 개혁의 이념에서 이탈
개혁의 입장을 취하였다. 1525년 1월 17일 츠빙글리와 급진주의자들의 공개적인 논쟁 이후, 취리히 주정부는 18일에 모든 유아에게 세례를 행할 것과 토론 중지를 명령하고 이 급진주의자들을 추방했다. 추방된 자들은 21일 저녁 취리히에 있는 만츠의 집에 모였는데, 게오르그 블라우록(George Blaurock)이 그
급진혁명가의 소요를 누르고 복음주의교회의 확립에 노력하였다. 특히 마르부르크회담에서는 성찬에 대해 일치를 얻지 못하고, 스위스 종교개혁자 U. 츠빙글리와도 결별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동맹의 꿈이 깨졌다. 루터는 최후까지 설교·강의·권고·저술에 종사하고 귀족들의 분쟁화해를 위해 고향으
낮추고 이기적이지 않은 삶을 살도록 격려하였기에 추종자들이 많았으며 그의 돌봄은 서민들을 위한 삶의 모델이 되었다.
2) 종교개혁 시대의 목회적 돌봄
종교개혁 시대는 목회적 돌봄에 가장 급진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만인제사장설과 성경을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