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우리는 본 연구를 통해 윤치호에 대한 기존의 가치 판단이 개입된 시각에서 벗어나 그의 실력양성론을 초기부터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그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기독교’라는 기재를 발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실력양성론과 친일논리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저항을 하며 궁극적으로 민족 운동을 하였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민족의식에 입각한 저항시를 썼다는 것이며1), 이런 점을 감안하여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에서 윤동주가 민족의식에 입각한 민족주의적 정신을 고찰해 보려 한다.1)
들어가면서
복음의 씨를 뿌릴때 우리는 최소한 그 땅의 토양과 풍토와 지질을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제주도의 귤감나무를 북쪽에다 이식시켜 놓으면 죽어버리거나 기형으로 자라거나 열매를 맺더라도 먹을 수 없는 열매를 맺는것과 같이 기독교의 복음도 그 복음의 씨가 어떤 토양, 어떤 기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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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자 김활란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단문제가 한창 논의될 때 나온 「친일파군상」에서는 김활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김활란 여사는 본의로써 전쟁에 협력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진의의 여하는 미상이나 당시 왜 경찰의 주목과 엄중한 감
우리는 당시 민족독립의 염원에 대한 일제의 포악이 가장 야수적으로 저질러진 그 날의 비극을 상기하면서 다시는 내 조국, 내 민족을 그런 비참하고 참담한 상태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전 조상들의 그 나라사랑, 민족사랑의 뜻에 참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