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북한의 기독교(북한의 그리스도교)
1972년 74 공동성명 이후, 남북 적십자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되었을 때 우리 대표단을 수행한 기자들이 전직 목사로 김일성의 외증조부이자 당시 부주석이었던 강양욱(1982년 사망)에게어찌하여 북한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느냐고 질문하자, 강양욱은미 제국주의가
일본의 조선 늑탈로 국권을 잃었고, 한민족사는 단절되는 비운을 맛보게 되었다.
국권을 상설하기 전, 나라가 품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교육입국의 정신을 내세우고 교육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첫 번째는 민족지도자의 교육운동이었고, 두 번째는 기독교 선교사의 교육운
하나로 응집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독교의 농촌 전파에 대해 중국 정부가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 대규모 농민 봉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국농민연합회 같은 조직의 설립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농민의 전국적 봉기로 인한 중국의 분열은 불가능하다.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윤리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같은 결과의 바탕 위에서만이 1천만 그리스도인들의 숙원이라할 “통일한국을 하나님 말씀 위에 세우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평화통일과 민족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실천과제로서 북한선교방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는 [평화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한 교회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관심은 첫째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평화통일개념의 정립'과 둘째 '북한선교를 위한 교회의 과제'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1997년 8월15일, 제52주년 광복절 경축식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