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기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는 당대에 이미 이황이나 이이의 비판에서부터 보인다. 이황은 “화담의 소견은 기수일변 氣數一邊에는 매우 뛰어나지만 그 주장이 리를 기로 인정한 것임을 면할 수 없다”라 하였고, 이이도 서경덕의 일기장존설 一氣長存設에 대해 리와 기를 혼동한 것이라 비판하였다
설 理氣說 〉· 〈 태허설 〉· 〈 귀신사생론 鬼神死生論 〉 등의 대표적인 글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시(詩)·부(賦) 등의 문학 작품이 있다. 1575년(선조 8) 우의정에 추증, 1585년 신도비가 세워졌다. 개성의 숭양서원 ( 崧陽書院 ) · 화곡서원 ( 花谷書院 )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