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목사와 김익두 목사였고, 감리교회에서는 신비주의 부흥사 이용도였다.
이들이 이끄는 사경회와 부흥회의 물결이 전국 교회를 휩쓸게 될 때에 교회 안에서는 잡다한 분파운동과 이단 사이비들도 출몰하게 되었다. 먼저 이들 인물을 중심으로 1920~30년대의 교회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길선주가 성령의 감화를 받고 손을 들고 일어선다. 이것을 본 존스톤 박사는 장차 조선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고, 길선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길선주 장로는 존스톤의 집회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3. 목포 부흥회
1906년 하반기에 일
한국교회가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빨리 그리고 크게 성장한 것은 세계 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갖는 공통적인 견해라고 할 만하다. 그렇게 빠르게 성장한 것에 관한 원인을 많이 찾을 수 있지만 아마도 일반적으로 볼때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생각일
Ⅰ. 한국신학의 유형
1. 보수적 진보주의 : 길선주
1869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한 길선도는 1897년에 기독교에 입교하기 전까지 한학, 수학, 선도, 수양, 의학연구 하였고 1907년의 대부흥운동 때에 크게 활약하여 전국으로 사경회와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1935년 11월18일부터 있었던 셩서노회 사경회 마
목사를 만나게된다. 부산 나병원교회에 전도사로 부임 울산의 방어진 교회, 남창교회 및 양산의 원동교회 등 개척 설립하게되고, 1935년 평양장로신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 신사참배가 결의 되던 해 신학교 졸업하게되지만 학교는 폐교되고 우편으로 졸업 증서 받는다. 경남 나병원교회에 부임하였다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