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김굉필은 황해도 단종 2년(1454년) 5월 24일에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서, 달성군 현풍에서 성장하였고, 연산군 10년(1504년) 51세의 나이로 전라도 순천 유배지에서 죽었다. 후에 처가에 있으면서 가까운 곳에 한훤당(寒暄堂)으로 부르는 작은 서재를 짓고, 뒤에 현풍 서쪽 대니산 남쪽 솔례촌(率禮村
1. 한훤당 김굉필의 생애와 철학사상
고려 후기 이후 성리학을 수용한 신진 사대부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조선의 건국을 주도하였으며, 이에 따라 조선 왕조는 신유학인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삼는다. 그러나 조선 건국이후 1백 여 년 간의 유학은 문장 중심의 사장과 통경명사 중심의 학문이었다.
이때는 곧 사림파 학자들이 주체가 되어 성리학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때이므로 그들의 학통(學統)의식을 고려하면 사람파의 연원은 고려 말의 절의파에서 찾을 수 있다. 기대승(1527~1572)은 우리 나라 성리학의 학통을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Ⅰ. 서론
조광조는 한 시대를 풍미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의 개혁성은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그 시기의 나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개혁사상은 치국의 도 중에서 왕의 도리를 가장 주요시 여기는 왕도정치였다. 정암은 왕과의 경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