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서사시를 위한 시도
시에다 역사를 아우르려는 ‘서사시’에 대한 시도는 어느 때든지 존재하였다. 그러나 역사와 시를 결합하는 방법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들의 결합은 시와 역사의 만남을 요망하는 긴요한 사유가 갖추어져야 기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와 시의 결합이 어렵다는 의견은
김대봉과 알게 되어 ‘맥 1938년 6월 15일 창간되어 1939년 4월에 통권 5호로 종간된 시전문지.
’의 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광복 후 한때 조선문학가동맹에 관여한 적이 있으나, 전향하여 한국자유문학가협회에 가담하였고, 1962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
김대봉(金大鳳)ㆍ김용호(金容浩)ㆍ함윤수(咸允洙) 등과 동인지 [맥]의 동인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같은 해 시동인지 [아(芽)]에도 작품을 발표, 1940년 [문장]에 시조 <봉숭아>가 추천되었다.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에 <낙엽>이 당선되었다. 1942년 김정자와 결혼한다. 1943년 장녀 훈비가 내어난다. 1
김대봉(金大鳳)과 알게 되어 《맥()》의 동인이 되면서 시작(詩作)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 1941년에 첫 시집 《향연(饗宴)》을 도쿄에서 간행, 1943년에는 시집 《부동항(不凍港)》이 일제에 압수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광복 후 한때, 좌익문학 단체에 관여한 일도 있었으나 완전히 전향하여 한국
김대봉과 알게 되어 <<맥(콕)>>의 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광복 후 한때 조선문학가동맹에 관여한 적이 있으나, 전향하여 한국자유문학가협회에 가담하였고, 1962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73년 5월 14일 사망하였다.
1935년 <<신인문학>>에 시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