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항일 유격대 출신인 민족보위상 김창봉, 대남총책 허봉학, 인민군 총참모장 최광 군 수뇌부로서 이들은 유일사상체계확립에 반대하다가 숙청당하였다. 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김일성저작집 23(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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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초 김정일은 선전
김일성, 김정일의 군대로 변모해왔고, 선군정치시기에는 군이 당 내 모든 사업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당-군 관계는 후계세습문제, 南-北 및 對美관계, 체제 내 통제용이성 등의 여건과 환경 속에서 조금씩 변천해왔다.
북한의 당-군 관계의 특이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김일성 또한 유일 사상체계의 확립을 위해 여러 현장 지도에서 혁명적 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상투쟁을 독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1964년 12월 8일에 ‘예술영화촬영소’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 확대회의에서의 김일성 연설은 ‘아동영화 문제를 중시’하는 것을 포함
2. 우리식 사회주의
1978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책임간부협의회에서 김정일이 “우리식대로 살아 나가자.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당이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는 전략적 구호이다."라고 말한 것이 우리식 사회주의의 기원으로 본다.「통일신문」http://www.unityinfo.co.kr/ 검색일: 2008년 11월 30일, 검색어: 우리식
③박헌영의 역할 →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남한 내부의 남로당 세력을 이용하려 하였다.
1950년 당시 북한 내부에는 두 명의 지도자가 있었다. 하나는 소련의 후원을 받는 사회주의자 김일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한에서 활동했던 남로당의 지도자 박헌영이었다. 북한 건국 초기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