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한 사회의 지배 세력
마한의 정치적 성격을 생각할 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마한을 구성한 기본단위는 소국이었다는 점이다. 이 소국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립 시기나 성립주체를 달리 하면서 각처에 산재하여 있었고 이들은 맹주세력을 중심으로 연맹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고분의 발굴부터이다. 계속해서 1994년 광주시 명화동고분에서도 상당량의 원통형토기가 분구 주변에서 열을 지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이 특수한 토기는 분구 주변에 분포하여 세워졌던 것이 명백하다. 1995년에는 나주복암리 2호분의 분구주위에서도 호형(항아리)의 특수토기가 출토되어, 고분의 분
옹관묘 또는 독무덤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무덤쓰기의 한 방식으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옹관 또는 독널이란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체 즉 주검이나 뼈를 묻은 토기를 말하고 있다. 처음에는 크기가 크지 않았으므로 주로 어린아이의 주검을 묻는데 쓰였다. 옹관묘의 시작은
백제고분 - 고대사연구회
1. 서언
한국의 역사 연구는 문헌사료가 부족하여 역사상을 복원하는데 있어 당시대인들이 남긴 문화 유산인 고고자료에 많이 의지한다. 주지하다시피 고대로 올라갈수록 문헌사료, 나아가 고고자료는 더욱 부족하여서 역사 연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고분이 확산되었고, 특히 전라도지방에서는 돌무덤의 전통과 가야식의 구덩식 돌덧널무덤도 있다. 영산강 하류의 영암 내동리, 나주 반남면 일대에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무덤이 성행하고 있다. 신촌리 9호분의 제2호 독무덤은 한 봉토 안에 큰 항아리를 여러 개 묻은 가족묘로서 금동판을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