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으로 해서 경상좌도, 서울.경기지방 및 전라도 등 전국에 두루 결쳐 큰 학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경기. 호남의 서인이 주측으로 된 율곡학파는 물론, 경상좌도의 남인이 주축으로 된 퇴계학파에 대해서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학파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남명하파 또는 강우학파라고 부른다.
연산군 7년(1501)에서 선조 5년(1572)에 이르는 시기는 조선에 4대 사화 가운데 3대 사화가 잇달아 일어난 사화의 결정기에 해당한다. 실제로 조식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과 참변을 당하는 것을 몸소 목격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남명은 학문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적극적인 의
남명학파의 학풍은 나아가 경상우도의 학풍을 특징짓는 용어가 되기도 하였다. 퇴계의 학풍이 미친 경상좌도의 ‘상인(尙仁)’과 비교하여 경상우도는 ‘상의(尙義)’가 있다고 지적한 남인 윤승훈의 말은 대표적인 것으로서, 경상우도를 지역적 기반으로 한 남명학파의 학인들은 ‘의’로 대표되는
파의 학문세계를 추구하였는데, 특히 김해의 산해정, 합천의 계부당. 뇌룡정, 산청의 산천재 등지는 그의 사상적 기저를 발현하는 대표적인 교육장소였다. 남명학파의 지역적 범위는 대체로 진주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김해, 밀양, 청도, 북쪽으로는 창녕, 현풍, 성주, 서쪽으로는 산청, 함양, 하
남명학파(南冥學派)
남명학파는 남명(南冥)조식(曺植)과 그 문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이다. 이 학파는 실천을 중시하였으며, 퇴계학파와 더불어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다. 조식은 학문이란 아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반궁체험(反躬體驗)과 지경실행(持敬實行)이 더욱 중요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