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한국 교회는 재정 자립을 이룩한 교회로 시작했다. 조직적인 성경공부가 이루어졌으며 선교사와 사역자 뿐 아니라 초신자들도 열심히 전도했다. 1904˜7년에 일어난 대부흥은 성경공부와 기도 생활에서 얻게 된 선물이다. 선교가 시작된 지 불과 10년 만에 신자 수가 불어나기 시작해 1900년부
독일 태생의 역사가 필립 샤프( Philip Schaff)는 19세기 중반 미국의 종교를 평가하면서, 장로교가 “의심의 여지없이 , 가장 수가 많고, 존경할 만하며, 가치 있고 , 지적이며, 영향력이 있는 교단 중의 하나이며, 특별히 견실한 중산층에 강력한 거점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내 여타 개신교 교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1893년에는 북장로교와 남장로교 사이에 ‘장로회 정치를 쓰는 선교 공의회(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가 조직되었고 이후에 호주 장로교외 캐나다 장로교도 가입하였다. W. M. Baird, “Union of Presbyterian Missions in Korea,”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
<교회사를 찾아 떠나는 선교여행>
1장. 한국교회의 선교의 특징 선교지역의 분배를 통하여 효율적인 선교활동을 가능하게 함
-부산경남지역은 호주 선교부
-대구경북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전라도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충청도는 미국 감리교 선교부
:인천은 항구도시이며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아펜젤러
미국 여객선
한국 선교를 위한 전략회의
1880년대 인천 제물포항 모습
최초의 한국교회 송천예배당 (소래교회)
두 번째 소래교회
세 번째 소래교회
1910년대 파송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
유진벨 선교사와 헤리슨 선교사 지방선교여행
1915년대 목포 유달산
1920년대 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