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을 방어하도록 한 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시설들이 1907년 8월에 불태워졌다가 복원을 한 것이 현재의 남한산성이라고 한다.
■ 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
평소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조선시대 유적지를 떠올려보니 경복궁 같은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백제의 수도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성으로 알려졌으나, 신라 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각종 시설물을 세우고 성을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
기행의 목적지로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문무왕 12년에 한산에 “주장성”을 쌓은 것으로 시작된다. 그 한산이 지금의 한강 이남의 광주․하남에 해당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며 끊임없이 축조되어 왔고 변모하여 온 역사가 매우 깊은 유적지이다.
축성할 것을 청하였으나 도성 역사가 끝난 직후이기에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이 지쳐있었고 재정상황도 넉넉지 않기에 보류 중에 있었다. 그런데 숙종 36년 9월에 청나라에서 해적의 피해를 입고, 가까운 연해 지방의 방어에 유의하라는 외교문서가 조선에 전해졌다. 이를 계기로 병자호란 후 맺어진 약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 수어청을 설치하면서 치소도 성내 로 옮겨 수어사절제를 설치 목사겸방어사로, 1630년 (인조8)에 광주부윤으로 재차 강등되었으며, 1633년(인조11)에 겸토포사로, 1637년(인조15)에는 다시광주부로 승격되어 부윤을 두게 되어 1651년(효종2)까지 지속되었음.
그동안 부윤으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