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이 꿈 속에서 시성(詩城)·취향(醉鄕)을 지나 수향(睡鄕)에 이르러 화서(華胥)·괴안(槐安) 등의 나라와 양대(陽臺)·상강(湘江), 그리고 나부(羅浮) 등지를 거치는 동안 역대 몽유(夢遊)의 대가를 만나 보고 돌아와서 천군(天君)에게 모든 것을 복명(復命)하며 스스로 흔열히 즐기다가 깨어보니 악착
남효온
방외형은 격렬한 비분, 과격한 비판의 자세가 체제에 용납되지 못하므로, 결국 현실권 밖으로 자기를 이탈시켜 버린 부류, 氣節을 숭상하면서 사회적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는 放達不羈(방달불기)의 인간형
2. 방외인문학의 문인층
세조의 명분을 등진 왕위 탈취 및 권력층의 탐욕ㆍ무
남효온
등장
-성종 ; 소릉복위 상소 성종 9년(1478) 4월 남효온이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복위를 주장하였다. '이미 왕이 아닌 노산군'의 생모라는 이유로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문종의 능침에 묻힌 관곽(棺槨)이 파헤쳐진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세자빈 시절 단종을 낳고 문종이 즉위 이전에 세상을
남효온(南孝溫)의 문집인 ≪추강냉화 秋江冷話≫(1477)에 의하면 영동민속에 매년 3·4·5월 중에 택일을 하여 무당들이 산신을 제사하는데, 3일 동안 큰 굿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추강냉화≫의 기록은 반드시 단오제를 지칭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시기 중 5월이 포함되어 있고, 또 그 의식이
지킨 두문동 72현과 그 후손들을 정계에 등장시킴.
·세종 - 집현전을 통한 성리학 연구, 문물제도 정비⇒세조찬탈 때 사육신과 생육신이 생겨남.
·성종 - 세로찬탈을 부정하는 소릉복위상소 남효온이 1478년(성종 9) 세조에 의해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의 복위를 상소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