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는 문학 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고 정치, 종교, 철학 등에도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미를 가진 ‘romantic'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독일에서 처음 썼으며 다음에 프랑스에서 문학이론에 사용하게 되었다. 독일의 romantic은 영어에서 유래하고 독일어에는 후에 나타났
낭만주의 작가들이 구현할 수는 없었다. 독일의 자연주의는 시대적인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구체적인 현실을 지향했다는 면에서도 사실주의와 연계되어 있다. 자연주기 초기에는 현재의 현실에 연관된 소재와 내용의 혁신에 대한 요구가 지배적이었다. 반면 새로운 양식에 대한 요구는
문학관을 정립해 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공치하에 있는 헤센의 폭압정치에 비판을 가하는 반면에 지배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는 민중에게는 따뜻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의 웅변시간에 그는 ‘카토 폰 우티카(Cato von Utika)`에 대한 변론을 한 적이 있으며, <자살에 대해서>라는 작문 및 <프로츠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세계를 후각 적으로 완전히 파악했으며 일상의 모든 냄새를 구분하고 분류하여 머리 속에 저장해 둘 수가 있었다.
반면 그르누이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에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냄새 없는 인간이었다. 이 세상 모든 냄새를 다 맡을 수 있는 그의 몸에서는 정작 아무 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