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호 편, 노출판사, 1986. 35쪽.
독립협회 해산 이후 이상재를 비롯한 다수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에 참가했던 150명의 기독청년들은 선교사들이 교회의 민족운동참여를 금지·방해하고 나서자 독립적인 기독교조직을 갖기 위해 그 이듬해인 1899년에 YMCA 창설을 요청하였다. 신용
그는 아펜젤러 등 미국인교사와 서재필의 지도하에 자유·평등과 민주주의 등 근대적 정치사상에 눈떴다. 그 결과 그는 서재필이 창립한 독립협회의 멤버가 되어 자유인권운동에 앞장섰으며 「협성회회보」·「매일신문」등 자기가 창간한 언론매체들을 통해 새로 터득한 혁명적 사상을 전파하였다.
눈을 뜬 것은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주시경 선생은 신학문에 접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개화운동에 종사하였다. 배재학당 재학 시절 진보적 학생단체인 협성회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였으며 독립협회 회원으로 독립신문의 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귀리나 메밀가루를 국물에 풀어서 먹는 등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정도의 식생활을 했다. 노동자들은 한 끼 식사로 대개 밥과 국, 김치만을 먹는데 밥과 국은 큰 그릇에 담고, 김치를 찬으로 먹었다. 이 식사는 양적으로는 많은 편이나 영양적으로는 단백질이 부족하고, 맛이 없는 거친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