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가사가 만들어져있다.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에 시작하는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언급하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만 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것만 집어넣고 있어”라는 가사로 이야기 하고있다. 학교의 교실은
이순신 장군의 칼에 씌여진 글로써 染자가 장군의 공업적인 이미지를 나타내준다. 소설「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시작할 무렵부터 그가 물러가는 적의 전면에 자신의 육신을 내던져 전사하기까지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당대의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순신의 조정능멸과 임금기만,
노래 하나로 그 지역을 기억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언젠가 한 번 드라마를 통해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비교적 가사도 어렵지 않고 쉬운 멜로디 때문에 귓가에 맴돌기도 했었다. 당시엔 단순히 이런 노래도 있구나, 트로트인가? 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겼지만
들어가기 (『삼국유사』의 중요성)
향가는 향찰로 표기된 신라시대의 노래이다. 현전하는 신라시대의 향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14편이 전부이지만 당시에 노래로 불려졌던 향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향가는 향찰로 표기되었기에 작품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올바른 해독에서 출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비판하였다.
둘째 서포는 우리 시가 외국어로 번역될 수 없는 이유가 운율(韻律) 때문에 그러함을 명시하였다. 즉 서포가 ‘인도의 시를 중국어로 번역하게 되면 다만 그 뜻을 알 뿐이지 그 말의 아름다움을 전하지 못한다(譯以秦語 只得其意 不得其辭)’는 구마라십의 언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