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를 지불하여야 하는데, 이를 소작료라 한다. 소작료는 논에서는 벼, 밭에서는 감자·보리·콩 등으로 납품하는데 이것을 물납소작료라 하며, 화폐를 지불하는 것을 금납소작료라 한다. 한국에서는 소작료를 3·7제로 실시하다가 1950년의 농지개혁으로 공식적으로는 소작제도가 없어졌다.
농지임대차의 증가
우리나라는 농지개혁에 의해 일단 경자유전의 자작농체제를 확립했지만, 그후 이 자작농체제는 붕괴되고 소작제 또는 농지임대차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 농지임대차의 성격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는데, 어쨌든 임차료가 일제시대와 같은 고율소작료는 아니며 순수
농업 사회의 특징과 함께 러시아인의 집단주의 형성에 큰 몫을 했고 공동체 생활을 했던 러시아인들은 후에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때도 거부감이 적었다.
(4) 사회주의와 혁명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한 것은 지식계급인 인텔리겐차였다. 이들은 러시아의 문화와 전통에서 개선방향을 찾는
개혁안을 제시한 <경세유표>와 지방행정에 관한 개혁을 주장한 <목민심서> 그리고 형정에 대한 견해를 밝힌 <흠흠신서> 등이 유명하다.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기에 걸친 반계, 성호, 다산 그리고 서유구(풍석) 등의 새로운 농업개혁론의 주축은 재래의 지주·전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토지 소유와 농
개혁론이 봉건제의 철저한 부정에는 이르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공계층에게 토지를 주도록 한 것은 당시의 상공업의 발전이 아직 상공계층의 자립을 허용할 정도 이르지 못하였음과 동시에 상공업이 농업의 부차적인 것으로 보려는 인식이 남아있는 농본적 입장에서의 유형원의 시각을 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