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록 다른 사람들의 저술을 많이 원용하였다고는 하나 <서유견문>은 유길준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짜임새 있게 만든 입문서이다.
또한 韓末의 충신인 忠正公 민영환이 1896년 帝政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2세 대관식에 한국대표로 참석했을 때의 기행문이었던 <海天秋帆>이 있다.
니콜라이의 정치적 무능력으로 인해 러시아 왕가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속수무책으로 혁명을 허용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가족은 볼셰비키 군인들의 손에 무자비하게 학살됨으로써 그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아나스타샤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라는
3.모스크바 러시아
몽골의 통치에서 독립을 이룬 이반 3세의 손자인 이반 4세는 3살의 나이에 대공이 된다. 초반 몇 년간의 섭정 통치가 끝나고 1547년에 이반 4세는 기존의 대공이라는 명칭 대신 '차르', 즉 황제로서 즉위하게 된다. 이로써 분권적인 모스크바 공국 시대가 끝나고, 중앙집권적인 모
슬라브 인 이전의 시대는 일단 접어두고 그 후의 역사만 볼때, 먼저 ‘루시의 나라’라고 불린 동슬라브 인의 국가가 있었다. 키예프가 그 중시이었으므로 ‘키예프 러시아’라고도 한다.
킹예프 대공국이 몰락하여 키예프 러시아가 불열한 후 짧은 기간의 블라디미르 대공국 시대에 이어 모스크바 대
1869년 여름, ‘아르사마스’에서의 일박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힘.
육체적, 형이상학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억제시켜줄 적당한 신앙을 원하게 됨.
절망 상태에 대한 어떠한 대답이나 위로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수년 동안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중요한 과제를 방해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