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1910년 병합 이후, 식민지조선을 대상으로 표방된 동화주의는 한편에서의 무단권력과 함께 식미지조선인에게 일선동화에 대한 동의를 유도해 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동화정책을 표방하면서 일제는 이론적 근거 중의 하나로 일선동조론을 내세우고 있다. 일선동조론은 일본의 근대사학연
의식구조까지 황민화하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 황민화의 수준이었다. 전시체제에 총체적으로 전력해야 할 시기에 조선인의 민족성을 유지한 채 동화정책만으로는 조선의 민족운동을 누를 수 없고, 더욱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조선을 통치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조선적인 모든 것을 말살하
단군의 건국 : 「삼국유사」「제왕운기」「세종실록지리지」「응제시주」「동국여지승 람」에 건국신화 수록
* 단군신화를 통해 본 고조선사회 : 제정일치의 사회, 농경사회, totemism, 선민사상의 성립
* 단군신화의 의의 : 홍익인간의 건국이념,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
단군(檀君)신화이다.
단군신화는 신화 자체가 말하고 있는 단군 조선의 시작년도와는 너무나 시간적 차이가 있다. 기원후 13세기 후반에 가서야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은 1500년을 왕 노릇하고 기자(箕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기자가 활동한 은․
억압이 무력해지자 봉건적 지배층은 경제적 수탈에 의하여 양인층과 노비층을 구속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신분제의 동요는 양인층과 노비층의 사회의식에 일정한 변화를 초래했다. 즉, 그들은 이전까지 자명했던 봉건적 신분의 권위나, 그 권위에 바탕한 사회적 억압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