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백전을 주조하여 국고피폐를 구하고자 하였다가 회수하였고 고종 20년에는 상평통보 당오전을 주조하였다가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저화(楮貨):태종 원년(1401)에 만들어진 법화. 이것은 주지(注紙)와 상지(常紙)의 두 종류가 있었다고 `경국대전`에 나타나 있기는 하나 `속대전`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디종학파의 화폐이론의 가장 큰 특징이자 출발점은 화폐를 ꡐ은행화폐ꡑ로 정의하는 것에 있다. 은행화폐란 ꡒ은행이 고객(=기업)에 대부하기 위해 은행자신에 대해 자발적으로 無에서(ex nihilo) 창조하는 부채ꡓ를 말한다. 대부를 위해 창조된 부채인 은행화폐는 화폐발행자와 화폐사용
① 경복궁중건 - 경제질서 왜곡
중건 자금 마련을 위해 원납전(願納錢)과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했으나 원납전은 원납전(怨納錢)으로 변질되었고, 상평통보(常平通寶)에 비해 액면가치는 100배지만 실제가치는 5, 6배에 지나지 않던 당백전은 경제질서를 심하게 왜곡시켰다.
② 인재등용 - 전근대적
당백전을 발행.
당백전은 실질가치가 명목가치를 따라가지 못해 유통경제를 크게 혼란시켰다.
일본의 개항, 그로 인해 일본에서의 외제품
수요가 급감함. 조선의 전통적 중 일 중계무역이 쇠퇴기에 접어들게 됨.
화폐의 전국적 유통.
상품작물 재배(판매를 위한 농업),
조세의 금납화
(자본주의적 요
당백전을 발행하기까지 하였다. 당백전은 오늘날의 통화증발과 같은 폐해를 낳게 하여 물가앙등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1868년에 공사는 사실상 완성되었다.
중건된 경복궁은 조선 말기의 건축·공예·미술의 결정체라고 할 만한 것으로서 오늘날에 이르도록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