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 왜 외교
고구려와의 연합구축에 실패한 김춘추는 계속적인 백제의 침략을 방어하기위해 당에게 원군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당 태종은 불확실한 답변을 주었고 당의 고구려 침략에 원군을 보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으나 그 사이에 오히려 백제에게 당항성을 비롯한 7개의 성을
머리말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악화하였다. 고구려가 중국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백제는 신라를 자주 공격하였다.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탈취하였고,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당항성을 공격하여 신라에서 당으로 가는 교통로를 끊
당항성을 빼앗아 그들이 당 나라로 조공하러 가는 길을 막는 것이었다. 왕은 마침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신라왕 덕만이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니 왕이 이 사실을 듣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4년 봄 정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태종이 사농승 상리현장을 보내 두
유래했다. 백제 및 신라의 대외무역항이었던 당항성이 이곳에 있었다. 2001년 화성군에서 화성시로 승격되었다. 시청은 남양동에 있다.
화성의 위치
위치: 경기도 서남단
화성시의 현황
면적: 688.4㎢
인구: 약 44만 9,354명
행정구역: 3개 읍 10개면 8개 동 477개 리
도,시,군청소재지: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르러 한 고총(古塚)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날이 새어서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음을 대오(大悟)하고 그냥 돌아왔다. 그후 분황사(芬皇寺)에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 : 元曉宗 ·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