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도발을 시도했다. 역사적으로 남북의 심리적, 정치적 거리는 북한의 대남도발에 의해 좌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남한도발로 인해 악화된 관계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다가도 북한의 새로운 대남도발 시도로 다시 악화되는 형태로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남도발로 본 남북 관계의 역사
공산 정권 수립과 전후 복구기(1945~1960)
대남도발 횟수 : 약 63건
1) 공산 정권의 대남도발 양상
1948년 9월 9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 창건을 시작으로 김일성은 남노당에
의한 대남도발을 강조
* 최대 대남도발 : 한국 전쟁(1950. 6. 25.)
. 또한 제주도 4․3사건, 여수․순천 사건, 무장게릴라 남파 등 폭력도발을 통해 적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남한 사회의 혼란조성 노력을 병행하는 가운데, 1949년 6
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면서 남북한 동시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제의하는 등 위장 평화공세를 전개하였다.
적이 아닌 같은 민족 공동체 강조
적개심 해소를 통한 인식혼란 유도
용어 혼란 전술 채택.
예) 민족공조, 자주, 자주통일
교묘한 선전, 선동
젊은이들의 긍정적 지지
대남 전략의 핵심
주한 미군을 제거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
대한민국과의 대화나 교섭에 “민족”강조.
개요
연관
김정일 정권은 북한정권 수립 50주년(9,9절)을 계기로 공식 출범하였으며 김일성 사망 후 현재까지 과도기 과정이라면 공식출범 이후의 시기는 체제안정기 단계라 할 수 있다.
① 국내와 정세변화에 실리적인 대응, 대남. 미 대외정책면에선 변동사항 없음
②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최대역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