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臨時議政院 及 政府擴大改造案’은 38회 의회 제13일 회의(1945. 5. 1)에 제출되었다. 민혁당이 제출한 院府(의정원과 정부) 확대개조안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의정원 속기록과 조소앙.엄항섭.박건웅 등 심사위원 3인의 심사보고서가 남아있다.
이 안이 제출된 이유는 첫째 전민족
회복운동을 위해 조직한 단체로‘동주공제(同舟共濟: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하자)’를 표방하면서 동제사를 조직하였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상당한 역할을 수행해오다가, 1922년 7월 신규식의 죽음을 전후한 시기에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사전)
회주의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사상적 평가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김희곤,「대한민국임시정부 연구」, 지식산업사, 2004, p83~85.
이렇게 동일한 임시정부를 대상으로 상이한 결론이 도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 조는 특히 시비가 엇갈리는 상해시기 임시정
회와 좌우합작운동, 남북협상 등으로 꾸준히 민족 통일 전선을 모색했으며 그 후에도 7.4공동성명 등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꾸준히 민족 통일 전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민들의 의식의 전환 없이 위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은 통일된 후에도 민족의 큰 장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Ⅰ. 서론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임정의 외교활동은 종래와 같이 막연하게 한국 독립에 대한 지지와 국제사회의 동정여론을 불러일으키려던 선전외교활동에서 벗어나 교전단체 승인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데까지 발전하였다. 이것은 태평양전쟁 발발로 아시아와 태평양 상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