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조선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따르면 요동지역에서 성장하던 고조선은 연나라와의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기원전 4세기 경,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보내 조선의 서쪽을 공격해 2000여 리의 땅을 빼앗고,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
이후석(2017)에 따르면, 연나라가 침입하기 전, 요하일대
만주 혹은 간도에 대한 애착은 쉽게 버리지도 못하고, 일정부분 현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본고에서는 대외관계사의 측면에서 이와 관련하여 조선후기 북변외교에 중요한 화두들 중 대표적인 '나선정벌'과 '백두산정계비'에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대외적으로는 雙城摠管府를 수복하고 附元勢力을 숙청하였으며 軍지휘관 임명, 貢物등의 문제에 있어서 元의 간섭을 부정하였다. 反元改革에서 高麗가 얻어낸 성과는 元과 강화를 맺기 이전 對宋·遼, 對宋·金관계에서와 같이 對中國關係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元으로부터 승인
정벌을 재개한 쿠빌라이는 1279년 긴 전쟁 끝에 넓고 비옥한 남송의 토지를 복속시켰다.
(2) 남송 정벌
대칸 자리에 오른 쿠빌라이 앞에 가로놓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송과 체결한 조약을 이행토록 하는 일이었다. 이것을 위해 쿠빌라이는 학경(郝經)을 송에 파견하여 즉위를 알리는 동시에
대외적인 안정을 얻게 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말갈제부를 복속시키는 등 급속한 세력확장에 성공하게 된다.
발해의 건국 자체가 반당적인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은 발해 건국 7년만인 705년 중종이 즉위하자마자 장행급을 보내어 발해의 국가적 존재를 인정하였다. 당측에서 본다면 측천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