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大藏經)도 간행되었다. 뒤에 도교(道敎)가 보호를 받아 불교는 강력한 압력을 받았으나, 침잠(沈潛) 속에 사상적으로는 활기를 띠어 교의상(敎義上) 각 종파를 통합하려는 혼융불교(混融佛敎)가 주창되었으며 또한 유 ·불 ·도 3교의 조화설도 발달하였다. 도교도 크게 성행하여 《도장(道藏)》을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는 글이 발견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시대에 백제사찰의 강당위에 다시 건물을 짓고 대장전이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림사의 주요 건물 배치는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에 이르는 중심축선이 남북으로 일
Ι. 서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팔만대장경’이라는 명칭을 들어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워낙에 유명하기도 하고, 교과과정에 한 번 이상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어떠한 배경으로 인해 만들어졌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팔만대
금산사 주지로 취임 후 도영, 도법, 평상, 원행 스님 등 도제들과 용봉스님 등 사부대중의 협력을 받아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전통찻집, 보제루, 경비실, 목욕소 등을 신축하고 미륵전,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등을 해체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