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본의 경우 간기(刊記)가 ‘홍수동초간(紅樹洞初刊)’이라고 되어있고, 조선총독부인가로 대정(大正) 9년 9월 9일 한남서림(翰南書林)에서 발행되었다고 기록이 있으며, 국립도서관소장본의 경우는 ‘홍수동중간(紅樹洞中刊)’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김동욱본이 국립도서관본보다 먼저 된 것
대정 한왕내실수신위한왕
마침 한땅의 승첩을 듣고 한나라 서자 신이 정창을 격파하여 패배시켜 정창은 곤궁해 항복을 애걸해 한땅이 크게 평정되어 한왕은 실제 한신을 한왕으로 제수했다.
鄭昌當然失位, 不過做了一箇韓王的屬員, 苟全性命罷了。
정창당연실위 불과주료일개한왕적속원 구전성명
대정 교리 송계순의 집에 적소를 정하여 지내다가 나중에는 강도순의 집으로 옮겨 살았다. 9년이란 짧지않은 세월동안 추사는 지방유생과 교류하는 한편 학도들에게는 경학과 시문과 서도를 가르쳐 주었다.
1848년(헌종 14년) 풀려나왔고, 조정에 복귀한지 2년만인 1851년(철종 2) 헌종의 묘천(廟遷)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