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괄한다는 애초의 목표를 원만히 수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1919년 11월 독립전쟁론자로 평가되는 이동휘가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취임하고, 또한 1919년 후반과 이듬해 초까지 진행된 ‘일본의 시베리아 간섭출병’으로 연해주 및 시베리아 지역의 국제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었다.
한국을 해방시키려했다는 구체적 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등 열강의 의사에 종속되어 차일피일 임시정부의 승인을 미루고 광복군의 직접 참전을 통제해 온 중국 국민정부의 방침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임시정부 내의 반공주의자 엄항섭 같은 일부 각
국방계획과 내외 향응을 주비케 함’이라고 하였다. 임시군사주비단 설치 목적은 국내외가 연합한 전면전 즉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데 있었다. 임시군사주비단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1. 단원모집과 제1조 주의(독립군의 통일) 선전에 관한 사항
2. 군수품 징발 조사에 관한 사항
3. 적군의 중요
Ⅰ. 서론
남한 민족주의자들이 남북회담과 통일운동을 추진한 배경으로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좌우․남북 합작의 경험이다. 먼저 1948년 2월 16일 김구․김규식이 남북회담을 제의한 「2월서신」에는 해방직전 임시정부의 좌우합작 시도가 상당히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一九四四年